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현재 로 알려진 최초의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사람 또는 그룹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이름은 익히 익명으로 알려져 왔으며, 아직 실제로 그가 누구인지, 혹은 혼자인지 하나의 단체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또한 그는 2010년을 끝으로, 더 이상 비트코인 소프트웨어와 관련 된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사토시 나카모토

정체

사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구인지, 비트코인 개발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습니다. 그가 등록한 페이지인 P2P foundation profile를 보면, 사토시는 스스로가 일본에 거주하는 37세의 남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그러나 그가 매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그가 개발한 비트코인 소프트웨어가 일본 어디에도 문서화 되거나 등록되지 않고 바로 미국에서 쓰였기 때문에, 위 페이지의 신상은 거짓이라는 것이 다수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지금까지 그의 글들로 볼 때, 철저히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였고 따라서 그가 영국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얼마 후에는 미국식 영어를 섞어 사용하였으며, 이는 그가 영국인이 아니거나 한 사람 이상이라고 착각하게 만들려는 시도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또한 처음 공개 된 비트코인 소프트웨어의 경우, 여러 명이 공동으로 참여한 작업으로 보이는데, 이것을 근거로 일부 사람들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하나의 단체나 여러 명의 사람들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타당한 추측은, ‘사토시 나카모토’는 한 명의 영국인이며, 소프트웨어 개발은 여러 명이 공동으로 했다는 것일 것입니다.

The New Yorker와 Fast Company에서는 사토시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한 바 있습니다. The New Yorker는 Michael Clear라는 Trinity College의 조기졸업생에 대해 조사를 하였는데, 그는 해당 대학 재학생시절 최고의 컴퓨터과학 전문가로 평가 받았고, 졸업 후 아일랜드의 한 은행에 고용되어 화폐거래소프트웨어를 개발합니다. 이 후 그는 현재의 비트코인의 개념과 유사한, ‘P2P거래 기술에 대한 학술논문’을 공동 집필하게 됩니다.

Fast Company는 암호화 특허에 대해 조사를 하였는데, 한 암호화 특허(patent application)에서 비트코인 백서와 비슷한 필체-“…computationally impractical to reverse”-가 발견되었고, 또 해당 특허가 등록된 지 불과 72시간 후에 ‘bitcoin.org’의 도메인이 등록되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러나 해당 특허의 등록자인 Neal King과 Vladimir Oksman 그리고 Charles Bry가 모두 비트코인과의 연관성을 부인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소득은 없었습니다.

작업

사토시는 본인이 2007년도부터 비트코인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고 밝힙니다. 또한 2008에는 ‘metzdowd.com’의 ‘The Cryptography Mailing List’에 본인의 비트코인 백서를 업로드하며 ‘가상화폐’로 소개를 합니다. 2009년에는 이 백서를 실제로 구현한 소프트웨어를 공개합니다.

버전 0.1은 인터페이스 없이 윈도우상으로 구현된 것이었는데, ‘Microsoft Visual Studio’를 이용해 개발되었습니다. 코드는 세련되었으면서도 투박했고, 아마추어의 실력 같기도, 어떻게 보면 전문가의 솜씨 같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사토시가 이론적으로는 완벽했으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그에 걸맞지 못했다고 평하고 있지만, 사실 한 사람이 그러한 작업을 해냈다고 가정한다면, 더 없이 완벽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후, 사토시는 Bitcoin Forum을 통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수 차례 소프트웨어를 수정하였고 일부 개발자들과 계약을 맺어 협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해당 커뮤니티도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토시는 떠나기 불과 몇 달 전까지 끊임없는 수정작업을 거치며 거의 홀로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완성해냈습니다. 그는 거의 기부금이나 지원금을 받지 않았으며, 결국 마지막에는 ‘Gavin Andresen’을 그의 후계자로 지목하며, 그에게 ‘Bitcoin SourceForge project’와 ‘alert key의 복사본’을 넘겨주며 자취를 감춥니다.

동기

사토시는 아마도 ‘경제정책적’인 부분에서 회의를 느꼇던 것 같습니다.

아래는 사토시 본인이 포스팅한 내용입니다: “솔직히 이런 가상화폐로는 경제정책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 그래도 비트코인을 통해 전투에서 승리하고 몇년 동안은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생각해봐. 정부는 이전의 ‘Napster’와 같은 중앙통제기구가 있는 네트워크는 손쉽게 도려내왔어. 하지만 ‘Gnutella’나 ‘Tor’과 같은 온전히 P2P방식의 네트워크는 정부도 손쉽게 손대지 못해왔지.” “비트코인과 같은 화폐는 전달만 잘 된다면,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선 열광할거야. 다만 내가 잘하는 것은 그런 설명이 아니라 컴퓨팅이라는 것이 안타깝네.”

아래는 비트코인 첫 이체 시에 사토시가 이체메모를 남겨 둔 내용입니다: “2009년 1월 3일자 타임지에 보니 영국 수상(‘Alistair Darling’)이 은행들을 위해 두 번째 구제금융을 실시하려 한다는 구만” http://www.thetimes.co.uk/

그는 분명히 문제 많은 현재의 은행제도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향

비트코인의 가장 작은 단위는 0.00000001 BTC인데, 사토시의 노고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것을 ‘1 사토시’로 부르게 되었다.